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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MARLEY COFFEE 밥 말리 Who is marley?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혼열이라는 태생,기댈 곳 없이 고된 삶이었던 빈민가에서의 생활,내전과 가난으로 신음하는 조국,삶의 어려움과 억압 속에서도밥 말리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였다. BOB MARLEY 밥 말리 (1945년~1981년)자메이카 출신의 전설적인 레게 뮤지션.사랑,반전,평화를 노래한 음악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꿈꿨으며히트곡을 담은 'LEGEND'앨범은 세계적으로 2,700만장이 판매 되었다. 자메이카가 끝날 것 같지 않던 반목과내전으로 신음할 때 밥 말리는 콘서트 장에서대립하던 리더들을 손잡게 하고평화를 외쳤다. 3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전설이 된 그는 평화와 자유,희망과 변화를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 말리커피는 밥 말리의 철학과 씨앤브이인터..
인사동에서 만난 버스킹 허웅희 가수 인사동의 밤거리를 오랜만에 걷는다. 늦은 시간이 되니 버스킹 하는 분들이 참 많다.멀리서 김광석의 서른즘에를 앰프도 없이 큰 성량으로 부르는 가수가 있다.바로 버스킹 가수 허웅희씨다.말쑥한 외모에 수줍은 모습인데 목소리에서 힘 있게 내지르는 김광석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좋은 가수와 음악들이 있어 자주 와보고 싶은 인사동이다. ♥공감과 댓글을 주셔서 아주 큰 힘이 됩니다. 기타뉴스기타프로(악보다운)VIVA DUO
공세리성당 충청도 지역의 천주교 본당 중의 하나로 충청도에서 두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진 성당이다.1895년 6월에 설립되었다.공세리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인 아산.서산.한산.청주.옥천.회인 등 40개 마을에서 거두어들이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이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다.1895년 충청남도의 첫 성당이 성일륜(애미리오) 신부에 의해 공세리에 지어졌는데 이것이 공세리천주교회의 최초 건물이다.1922년에 고딕식 2층 건물이 새로 지어졌다. 공세리마을 초입에 있는 표지 보호수로 수령이 300년정도 된 느티나무 드라마촬영지로 유명한 공세리성당 보호수로 수령이 350년 된 팽나무 보호수로 수령이 380년 된 느티나무 ♥공감과 댓글을 주셔서 아주 큰 힘이 됩니다. 기타뉴스기타프로(악보다운)VIVA DUO
금천구청역과 안양천 퇴근길에 담아본 안양천 주변의 풍경이다.지금은 금천구청역이지만 왠지 옛 역명인 시흥역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다.깨끗하고 반듯한 지하철보다 사람 손때 묻은 것 같은 옛 모습의 역이 참 좋다. ♥공감과 댓글을 주셔서 아주 큰 힘이 됩니다. 기타뉴스기타프로(악보다운)VIVA DUO
부암동에서 노래하는 빗물 부암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동이다. 부암동은 정겨운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데 이유는 청와대가 가까운 탓이다. 군사보호구역,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신축 건물이 흔치 않으며 높은 건물도 거의 없다. 인왕산과 북한산 자락에 있어 녹지가 많으며 무계정사,대원군별장 등 7개의 문화재가 보전돼 있기도 하다. 최근엔 북악산과 연계한 산책 코스 덕분에 걷기 좋은 명소로 각광받고 있으며 소규모 카페와 레스토랑,갤러리들이 곳곳에 들어서서 한적한 나들이를 원하는 이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공감과 댓글을 주셔서 아주 큰 힘이 됩니다. 기타뉴스기타프로(악보다운)VIVA DUO
초록 도시 도시 곳곳에는 더운 날씨에도 우리에게 신선함을 주는 초록을 입은 나무들이 있다.그리고 그 안에서 다양한 노래를 하는 곤충과 새들이 있다.계곡물 소리만 있으면 도심의 더위가 싹 가실듯하다. ♥공감과 댓글을 주셔서 아주 큰 힘이 됩니다. [기타공연소식/레슨] http://guitarnews.net/ 용문사에 오르는 길에 도랑이 있고 흐르는 도랑물 소리는 용문사를 오르는 동안 시원함을 준다. 기타뉴스기타프로(악보다운)VIVA DUO
동작대교에서 바라본 노을 동작대교에서 바라본 노을이다. 평범한 하늘과 구름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바람 쇠로 갔는데 기대 이상으로 붉게 물든 아름다운 노을을 만났다. 해가 진후에 더욱 붉어진 노을 ♥공감과 댓글을 주셔서 아주 큰 힘이 됩니다. 기타뉴스기타프로(악보다운)VIVA DUO
경인 아라뱃길/아라김포여객터미널 한강과 서해를 안전하면서도 빠른 뱃길로 연결시키려는 경인아라뱃길 개척 노력은 과거부터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최초의 경인 아라뱃길 개척시도는 800여 년 전인 고려 고종 때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각 지방에서 거둔 조세를 중앙정부로 운송하던 조운(漕運) 항로는 김포와 강화도 사이의 염하를 거쳐 서울의 마포 경창으로 들어가는 항로였으나, 염하는 만조 때만 운항이 가능했고 손돌목(강화군 불은면 광성리 해안) 은 뱃길이 매우 험했다고 합니다. 이에 안정적인 조운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당시 실권자인 최충헌의 아들 최이는 손돌목을 피해서 갈 수 있도록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직접 연결하기 위해 인천시 서구 가좌동 부근 해안에서 원통현(일명 원통이 고개)과 지금의 굴포천을 거쳐 한강을 직접 연결하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